펀글) 실직, 죽은 새의 날개로라도 날고 싶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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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아름샘 댓글 0건 조회 1,044회 작성일 2003-12-16 16:01본문
중앙일보 '열린 마당 기자 포럼' 중에서
이경철 기자의 '문학동네 꿈동네'에 실린 글입니다.
그냥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서 퍼다 날랐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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새의 영혼
-장대송
새벽 방송을 위해 방송국 건물로 들어설 때 새의 주검을 보았다
푸른 새벽빛이 반사된 유리창, 어떤 나라이기에 영혼을 날려보냈을까
영혼을 내보낸 새의 몸은 새벽이다
삶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새의 몸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
아침이 되기 전 새의 몸 속에 있고 싶다
장대송 씨는 서울 마포에 있는 불교방송 PD로 일하고 있는 시인입니다. 이른 새벽 출근하다 죽은 새 한 마리를 보았나보군요. 온통 유리로만 된 빌딩에 반사되는 새벽의 푸른 빛 기운과 죽은 새. 죽은 새의 몸이 새벽인가, 날아간 새의 영혼이 새벽의 푸른 기운인가, 화두를 던지고 있군요. 그러다 돌연 새의 몸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하는군요. 새의 주검을 새벽빛의 아름다운 이미지로 풀어놓고 그 주검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니?
199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온 장 시인이 최근 두 번째 시집 『섬들이 놀다』를 펴냈습니다. 장 시인은 이제 마흔을 갓 넘긴 유능한 PD로 알려져 있습니다. 문단의 일들도 열심이어서 누구나 다 좋아하는 시인입니다. 공자는 나이 마흔을 일러 불혹(不惑)이라 하지 않았습니까. 세상에 흔들림 없이 자신을 꿋꿋이 해야할 때 차라리 죽은 새의 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니요?
시집이 나올 무렵 장 시인을 만나 그의 집 양평에서부터 불교방송까지 같이 출근 한 적이 있습니다. 그 때 장 시인은 PD 생활, 직장 생활을 접어야겠다고 조심스레 털어놓더군요. 그 좋은 직장 왜 그만두느냐 만류하려 했더니 자의가 아니라 타의, 그러니까 명예퇴직의 일종으로 물러난다더군요. 그러면서도 장 시인은 그만큼 보람있는 일을 하게 해준 직장에 감사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. 미숙을 벗고 이제 막 원숙하게 일할만한 나이에 물러나야하는 요즘 우리 직장 풍속도가 다시 한번 아프게 나를 때리더군요.
그리고 며칠 후 이 시집을 받고 맨 앞에 실린 위 시를 읽습니다. 시인의 이러저러한 사정을 알고 그 사정을 배경으로 시를 감상한다는 것은 시의 지평을 옹졸하게 만듭니다. 시는 사정, 현실적 제약에서 벗어나려는 끝없는 자유 의지 내지 욕구의 미학적 분출로, 현실에 비춰 기계적으로 해석되는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입니다. 그러나 1차적 독서의 출발로 시인의 제반 배경을 둘러보는 것도 유용한 수단이 될 것입니다. 명예퇴직이란 배경이 이해되니 난해한 듯한 위 시의 실마리를 잡은 듯하지 않습니까.
삶의 울타리를 벗어나 새의 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. 그리고 새벽 창공을 가르고 싶다. 새의 죽은 날개로라도? 아니 내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. 직장의 굴레를 벗어나 순수 시인으로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. 아 우리의 인생은 간절히 그 무엇으로 항상 다시 태어나고 싶은 것 아닌가. 한군데 안주하고 있을 때 우리는 또 역마살이 끼었다며 현생, 이승에서도 또 다른 삶을 열망해오지는 않았던가.
그렇습니다. 오륙도, 사오정은 옛말이 되고 이제는 삼팔선이라고들 합니다. 평생 직장이니 평생 뭐니뭐니 등 평생 변함없는 것은 없습니다. 오로지 새의 영혼같이 자유자재로운 한 개인의 자존(自尊)이 있어 세상을, 법륜(法輪)을 돌리고 있을 뿐입니다. 불교방송 PD 시인답게 장 시인의 위 시에는 불교의 핵이랄 수 있는 자존과 윤회가 엇돌지 않고 함께 굴러가고 있군요. 추운 겨울, 섭섭하고 아쉬운 연말 직장인들이여, 실직자들이여 힘내십시오. 온 세상 통통 털어 마지막 남는 것은 당신의 자존뿐입니다.
이경철 기자의 '문학동네 꿈동네'에 실린 글입니다.
그냥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서 퍼다 날랐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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새의 영혼
-장대송
새벽 방송을 위해 방송국 건물로 들어설 때 새의 주검을 보았다
푸른 새벽빛이 반사된 유리창, 어떤 나라이기에 영혼을 날려보냈을까
영혼을 내보낸 새의 몸은 새벽이다
삶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새의 몸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
아침이 되기 전 새의 몸 속에 있고 싶다
장대송 씨는 서울 마포에 있는 불교방송 PD로 일하고 있는 시인입니다. 이른 새벽 출근하다 죽은 새 한 마리를 보았나보군요. 온통 유리로만 된 빌딩에 반사되는 새벽의 푸른 빛 기운과 죽은 새. 죽은 새의 몸이 새벽인가, 날아간 새의 영혼이 새벽의 푸른 기운인가, 화두를 던지고 있군요. 그러다 돌연 새의 몸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하는군요. 새의 주검을 새벽빛의 아름다운 이미지로 풀어놓고 그 주검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니?
199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온 장 시인이 최근 두 번째 시집 『섬들이 놀다』를 펴냈습니다. 장 시인은 이제 마흔을 갓 넘긴 유능한 PD로 알려져 있습니다. 문단의 일들도 열심이어서 누구나 다 좋아하는 시인입니다. 공자는 나이 마흔을 일러 불혹(不惑)이라 하지 않았습니까. 세상에 흔들림 없이 자신을 꿋꿋이 해야할 때 차라리 죽은 새의 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니요?
시집이 나올 무렵 장 시인을 만나 그의 집 양평에서부터 불교방송까지 같이 출근 한 적이 있습니다. 그 때 장 시인은 PD 생활, 직장 생활을 접어야겠다고 조심스레 털어놓더군요. 그 좋은 직장 왜 그만두느냐 만류하려 했더니 자의가 아니라 타의, 그러니까 명예퇴직의 일종으로 물러난다더군요. 그러면서도 장 시인은 그만큼 보람있는 일을 하게 해준 직장에 감사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. 미숙을 벗고 이제 막 원숙하게 일할만한 나이에 물러나야하는 요즘 우리 직장 풍속도가 다시 한번 아프게 나를 때리더군요.
그리고 며칠 후 이 시집을 받고 맨 앞에 실린 위 시를 읽습니다. 시인의 이러저러한 사정을 알고 그 사정을 배경으로 시를 감상한다는 것은 시의 지평을 옹졸하게 만듭니다. 시는 사정, 현실적 제약에서 벗어나려는 끝없는 자유 의지 내지 욕구의 미학적 분출로, 현실에 비춰 기계적으로 해석되는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입니다. 그러나 1차적 독서의 출발로 시인의 제반 배경을 둘러보는 것도 유용한 수단이 될 것입니다. 명예퇴직이란 배경이 이해되니 난해한 듯한 위 시의 실마리를 잡은 듯하지 않습니까.
삶의 울타리를 벗어나 새의 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. 그리고 새벽 창공을 가르고 싶다. 새의 죽은 날개로라도? 아니 내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. 직장의 굴레를 벗어나 순수 시인으로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. 아 우리의 인생은 간절히 그 무엇으로 항상 다시 태어나고 싶은 것 아닌가. 한군데 안주하고 있을 때 우리는 또 역마살이 끼었다며 현생, 이승에서도 또 다른 삶을 열망해오지는 않았던가.
그렇습니다. 오륙도, 사오정은 옛말이 되고 이제는 삼팔선이라고들 합니다. 평생 직장이니 평생 뭐니뭐니 등 평생 변함없는 것은 없습니다. 오로지 새의 영혼같이 자유자재로운 한 개인의 자존(自尊)이 있어 세상을, 법륜(法輪)을 돌리고 있을 뿐입니다. 불교방송 PD 시인답게 장 시인의 위 시에는 불교의 핵이랄 수 있는 자존과 윤회가 엇돌지 않고 함께 굴러가고 있군요. 추운 겨울, 섭섭하고 아쉬운 연말 직장인들이여, 실직자들이여 힘내십시오. 온 세상 통통 털어 마지막 남는 것은 당신의 자존뿐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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